중세 반려동물 재판 5

중세 반려동물 재판(5)

https://youtu.be/yvKy8PV_VTw 인간을 해친 동물은 기본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이는 판결을 집행할 수 있는 전문 사형집행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유럽에서 사형집행인은 사법 제도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사형집행인의 목적은 공공 당국이 합법적인 형태의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근거를 둔다. 그런데 어떤 경우로든 사형집행관은 특정 기술을 요했다. 특히 이 당시의 사형 집행은 공개처형이 기본인데 공개처형이 항상 벌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전문 사형집행인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까운 마을이나 자신의 마을에 사형집행인이 있을 때는 비교적 쉽게 동물의 사형을 집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사형 집행인을 초청해야 했다. 이는 사형집행인에 대한 여행 경비..

중세 반려동물 재판(4)

https://youtu.be/yvKy8PV_VTw 해충의 숫자가 워낙 많으므로 재판 대상은 수없이 많다. 16세기 농작물에 피해 준 민달팽이에 대한 재판도 벌어졌다. 달팽이가 얼마나 많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는지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종교재판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최고형인 파문에 처해졌다. 달팽이 영혼조차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판결이다. 1519년 이탈리아의 스텔비오에서 두더지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은 동물에 대한 인정이 듬뿍 담긴 예로 유명하다. 두더지들은 땅속을 파헤치고 곡물이나 어떤 초목도 자랄 수 없게 만든다는 죄목 즉 농부들의 생계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기소되었다. 재판정은 두더지들에게 법원에 출두하여 급박하고 어려운 사정 등을 청원하여 그들 행위의 정당성을 증명하라는 명령을 내렸..

중세 반려동물 재판(3)

https://youtu.be/yvKy8PV_VTw 인간에게 피해를 준 동물은 일반 범죄자와 똑같이 판사, 검사, 피고 동물 그리고 많은 방청객들이 참가한 정상적인 재판으로 진행됐다. 1494년, 파리 동쪽의 한 농장에서 목동의 갓난아이가 살해된 사건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동물 재판이다. ‘농부인 아빠와 엄마가 집을 비웠고 젖먹이 혼자 요람에 누워 있다. 범인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를 덮쳤다. 잔인한 살육으로 가엾은 아이가 죽었다. 범인은 곧바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준엄한 재판관들에 의해 공적인 재판이 진행되었고 범인은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 범인은 돼지였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재판과는 달리 경고를 위해 마을의 돼지를 모두 참석시켰다.’ 증인 여러 명이 ‘부활절 아침 아기를..

중세 반려동물 재판(2)

https://youtu.be/BIx86kHZ9IM 한국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과 처우가 과거와 많이 달라지면서 반려동물이 사람에 위해를 주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앞으로 계속 화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동물 재판이 다반사였다. 재판이라면 피고와 원고가 있어야하며 적어도 피고가 자신에게 씌여진 죄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동물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에 동물을 재판하지는 않는다. 현대 법정에서 사람만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유럽에서 동물을 재판정에 세우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이 말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부의했다는 뜻이다. 기록에 의한 유럽의 동물 재판(..

중세 반려동물 재판(1)

https://youtu.be/BIx86kHZ9IM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 I, 재위 기원전 486∼기원전465)가 다르달네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를 공격할 때 부교 설치하는 도중 태풍이 불어 수많은 병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물에 빠트려 죽인 데 대한 벌로 바다에 태형 300대를 선고했다. ‘이 못된 반역자야! 네가 허락하건 안 하건 크세르크세스 왕이 너를 건널 것이다.’ 바닷물에 태형을 때려서인지 바다가 잠잠하여 예정대로 부교를 설치한 후 다르달레스해협을 건너 페르폰네소스에 도착 본격적으로 그리스 공략에 나섰다. 크세르크세스는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리우스 1세와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 사이에서 태어났고 기원전 486년 10월 다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