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반려동물 재판

중세 반려동물 재판(4)

Que sais 2021. 8. 12. 17:04

https://youtu.be/yvKy8PV_VTw

<해충 재판은 계속>

해충의 숫자가 워낙 많으므로 재판 대상은 수없이 많다. 16세기 농작물에 피해 준 민달팽이에 대한 재판도 벌어졌다. 달팽이가 얼마나 많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는지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종교재판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최고형인 파문에 처해졌다. 달팽이 영혼조차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판결이다.

 

두더쥐

1519년 이탈리아의 스텔비오에서 두더지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은 동물에 대한 인정이 듬뿍 담긴 예로 유명하다. 두더지들은 땅속을 파헤치고 곡물이나 어떤 초목도 자랄 수 없게 만든다는 죄목 즉 농부들의 생계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기소되었다. 재판정은 두더지들에게 법원에 출두하여 급박하고 어려운 사정 등을 청원하여 그들 행위의 정당성을 증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두더지의 변호인그리네브너는 들판에서 휘젓는 것이 토양에 좋고 해충을 잡아먹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두더쥐들이 재판정에 출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궐석재판에서 추방령을 받았다. 그러나 자비롭게도 법정은 개와 고양이로부터 두더쥐의 안전통행권을 보장하는 한편 임신중인 두더쥐와 어린 두더쥐에게도 2주일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559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참새가 어찌나 짹잭거리면서 목사의 설교를 방해하였는지 참새들을 파문했다물 재판 중에서 가장 진기했던 것은 1659년 이탈리아에서 불법침입과 고의적 재산 침해 행위로 법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은 송충이들이다. 소환장은 송충이 피해를 입은 5개 지역 나무에 하나씩 못질해 붙였다.

피고인 송충이들을 숲으로 퇴거하고 앞으로 곡물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을 법원으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법정이 그들의 행동이 인간의 행복을 파괴, 침해하지 않는 한송충이도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다.

배추를 파먹는 애벌레에게도 생명과 자유행복한 죽음의 권리를 인정했다그러나 그들은 경작지가 아니라 들과 숲으로 단호하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당대의 돼, 여우, 늑대, 염소, 당나귀, 황소, , , , 양과 같은 가축은 민사 및 형사 법원의 관할 즉 일반 법정에 속했다. 그러므로 유죄 판결이 나면 목매달거나 불에 태워 대부분 즉결 처형했다. 사비니의 암퇘지처럼 교수형이 집행된 경우도 있으며 1266년에 일어난 훤트네이--로즈의 돼지 화형에 처했다반면에 1557, 셍꽌텐(Saint-Quentin)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돼지는 산 채로 매장되었다.

반면에 들쥐, , 두더지에서 벌레, 딱정벌레, 뱀장어, 거머리, 메뚜기, , 달팽이, 흰개미, 바구미,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충교회법정에서 재판했다큰 동물이든 작은 곤충이든 법 앞에서는 모두 동등했다중세인들도 짐승들이 인간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입을 열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직자들이 이들의 재판을 공적으로 처리한 것은 당대의 종교적 개념으로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다.

중세시대에서 다리가 인간과 달리 여러 개인 피조물들에게 영혼이 있느냐로 논쟁을 거듭했다그러나 사람들은 선과 악에서 인간은 신의 모습 그리고 짐승들은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마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한마디로 악마가 깃들어 사람들에게 해를 준 동물은 악마이므로 당연히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생물은 처형이 아니라 파문으로 처벌되었다설치류와 곤충은 인간의 통제 대상이 아니었고, 시민 당국에 의해 압수 및 감금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의 정황상 교회의 개입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해충이 재판정에 제소되면 재판정은 해충을 재판에 회부할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한다. 재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해충을 변호할 변호사가 지명된다. 이후 법원은 소환장을 송달하는데 방법은 유머러스하다.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곳에서 크고 엄숙한 목소리로 소환장을 읽어 주는 것이다.

동물들은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의 주장을 변호할 기회를 세 번 갖는다. 그들이 패배하면 관례로 일정 기간 내에 지역을 떠나도록 명령받는다. 그런데 재판정에 동물들이 출석하지 않고 재판정의 말을 준수할 수도 없으므로 대부분 파문으로 결정된다.

 

들쥐

1733년 프랑스 로렌의 콩트리송 지구에서 들쥐의 피해가 극심했다. 농지에 뿌린 씨가 싹이 트기도 전에 쥐들이 파먹자 주민들은 주교의 지시대로 열심히 기도했지만 들쥐가 사라지지 않자 농부들이 법정에 제소했다. 사건을 맡은 로렌과 바루아의 검찰총장 대리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쥐들은 지금부터 3일 이내에 퇴거할 것. 또 콩트리송 재판 관할구에 인접한 숲과 강 전역 및 양쪽 강변 1.3m 밖에서 풀이나 식량을 훔쳐서는 안 된다. 이 조치는 추후 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토지를 해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 결과가 쥐들에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판결은 파문이 아니며 콩트리송 지구에 인접하지 않은 도젤, 라 마 에에르브랑, 포에루아르의 세 숲에서는 들쥐들이 계속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물재판의 슈퍼스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동물들이 여러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는데 놀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들 범법자에 대한 인간의 처신은 그야말로 놀랍다

재판도 간단한 약식 의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양측에서 증거를 제출하고 증인이 소환되었다. 중요한 것은 기소된 동물들이 일종의 법적 구조를 받았는데 한마디로 변호사가 동물들을 변호했다는 점이다. 변호사 비용은 대체로 동물 주인이 지불했다

변호사가 처형될 것으로 생각한 동물을 구해주었는데 당장 선임비용을 받을 수 없게 되면 돼지를 도살할 때 다리 한 쪽을 변호사에게 주는 것이 관례였다. 범죄에 대한 책임을 동물과 주인이 나누어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동물을 변호하는 변호사 비용납세자의 비용공공용도였다. 이와같이 동물들이 변호받을 수 있는 것은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한 영역 안에 들어가므로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물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을 인간 변호사가 변호한다는 것은 커다란 화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동물 재판을 잘 이용했을 때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499년 독일의 마을을 해친 곰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는데 재판은 법률 논쟁으로 이어졌다. 동물의 변호사는 곰은 곰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배심원을 전원 곰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으로 재판이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양이는 들쥐의 적

1519년 티롤의 슈텔비오 교회 판사는 변호사들의 전방위 활약으로 영원한 추방령 선고를 받은 들쥐들에게 자유 통행권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잔인한 개와 고양이들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이다.

이 문제는 1521보리농사를 망친 를 변호한 프랑스의 바르톨로뮤 샤세네(Bartholomew Chassenée)에 의해 보다 크게 부각된다. 의뢰인인 쥐가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는 소환장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소환장은 들쥐에게 피해 본 지역 모든 쥐에게 발부되어야만 정당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소환장도 무시되자 그는 검사 측의 흉악한 고양이들이 피고들을 협박하므로 출두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쥐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많은 농부들이 고양이들 키워 쥐들 주위에 죽치고 있기 때문에 쥐들을 데려오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 요지는 간명하다. 쥐들이 법정에 출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쥐들이 원래 유목 생활을 하므로 법정 소환장을 받을 수 없었으며 소환장을 받아도 고양이 때문에 법정에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고양이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쥐들이 안전하게 출정할 수 있도록 현금을 공탁하여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검사가 이 요구를 거부하자 소송은 기각되었다. 한마디로 들쥐 즉 변호사의 승리이다.

 

바구미

흥미있는 종교적 판결은 1546 프랑스 주교령 셍쥴리앙에서 열린 교회 재판에서였다판사는 신이 모든 피조물이 먹도록 지상에 과일과 채소를 채웠으므로 포도밭을 해치는 앙브르뱅이라는 바구미를 상대로 낸 고발을 기각했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농민들이 계속해서 미사를 드리고 포도밭 주변을 돌면서 그들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는데 갑자기 벌레들이 줄었다바구미들이 재판에 기소되었다는 것을 알고 선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교회의 판결에 불복하고 동물들이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으므로 죽일 수 있고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법원은 골머리 아픈 재판을 중재했다바구미에게 초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되 농민들은 그곳에 있는 우물의 사용권과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피난처로 사용할 권리를 받는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바구미에게 생존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구미 변호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그 지역에는 포도가 없으므로 바구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년 후 바구미가 다시 돌아오자 주민들은 강제로 바구미들을 법정으로 데려갔다. 재판은 15874, 앙트완 휘리오(Antoine Filliol)라는 변호사가 바구미의 국선 변호인으로 지정되면서 시작되었다그는 바구미의 식량이 마을의 농작물 즉 포도밭이 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신이 바구미가 먹을 생존을 위한 식량 즉 포도밭을 생활 터전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바구미가 셍쥴리앙 지역에 인간보다 먼저 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바구미에 대한 지배력은 주민에 있다고 주장했다.

골머리 아픈 이 문제를 교회는 신학으로 풀었다.

마을 사람들의 신심 부족이 해충을 불러왔다는 것으로 해충이 셍쥴리앙 지역에서 살게 한 것도 신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셍쥴리앙 주민들이 바구미에게 생활 터전을 주어야한다는 뜻으로 마을 인근에 바구미를 위한 목초지를 제공하고 이들 지역을 침해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바구미의 변호사 휘리오는 법원에서 제안한 땅을 양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바구미들의 식량이 포도라는 뜻이다. 반면에 검찰은 새로운 자리가 바구미들에게 딱 맞는 곳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기각했다.

8개월 후 다시 재판이 열렸는데 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법원의 마지막 페이지가 쥐 또는 일종의 해충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분석한 에반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기소된 바구미들은 재판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기록보관소에 보관된 법원 판결을 먹어치었다. 법원의 판결을 무효화하려는 조처다.’

 

물론 다른 유사한 판결을 감안하면 판결 내용은 유추할 수 있다. 교회 법원에 의해 바구미들은 유죄를 받고 파문된 후 특정 날짜와 시간까지 마을을 떠나라는 명령이다.

다시 바구미들이 다시 나타나자 포도밭을 둘러싼 재판이 또 다시 벌어졌다바구미의 변호사들은 과거의 판결을 제시했다바구미는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며 그 생계수단이 불행하게도 농작물이라는 주장이다또한 마을 사람들의 신심이 높지 않아 신이 해충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바구미는 양심수나 다름없다는 변호인데 바구미가 이후 어떻게 대접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바구미 사건은 중세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곤충들조차 중세인들의 사법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은 지구상에 태어난 동물들도 먹고 자고, 짝짓기를 하고, 자유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개체 즉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동물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므로 고통스러운 죽음의 고통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물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법과 도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은 확실히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일부 학자들이 침팬지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인간이 누리는 것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반려동물에 대한 대우는 상상을 초래할 정도인데 몽매무지한 중세시대인들도 이런 생각을 은연중 갖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매트 시몬 박사는 명백히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 재판이 어떤 면에서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흰개미집

반려동물을 포함한 각종 동물 재판은 유럽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1713년 브라질의 마라냐오주에 있는 산안토니오 프란체스카 성당의 수도사들이 땅을 뒤덮고 있는 흰개미를 고발했다흰개미들이 식량과 인간들이 사용하는 각종 가구와 집기들을 마구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흰개미들의 변호인은 흰개미들을 위해 유창한 변론을 했다. 변호사는 흰개미들이 수도사들보다 그 땅에 먼저 정착했으며 더 부지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회는 흰개미가 유죄이며 흰개미들은 수도사들을 괴롭히는 일을 즉각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반면에 수도사들은 흰개미들을 위한 대체 용지를 마련해 주고 수도사들이 그곳에 사는 흰개미들을 못살게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부연하여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은 규정대로 개미들 앞에서 낭독되었으며 수도원의 기록에 의하면 개미들에게 곧바로 새로운 땅이 주어졌다고 한다.

 

'중세 반려동물 재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반려동물 재판(5)  (0) 2021.08.12
중세 반려동물 재판(3)  (0) 2021.08.12
중세 반려동물 재판(2)  (0) 2021.08.12
중세 반려동물 재판(1)  (0)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