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의 역할>
인간을 해친 동물은 기본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이는 판결을 집행할 수 있는 전문 사형집행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유럽에서 사형집행인은 사법 제도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사형집행인의 목적은 공공 당국이 합법적인 형태의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근거를 둔다. 그런데 어떤 경우로든 사형집행관은 특정 기술을 요했다. 특히 이 당시의 사형 집행은 공개처형이 기본인데 공개처형이 항상 벌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전문 사형집행인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까운 마을이나 자신의 마을에 사형집행인이 있을 때는 비교적 쉽게 동물의 사형을 집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사형 집행인을 초청해야 했다. 이는 사형집행인에 대한 여행 경비 등을 포함하여 적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록에 의하면 프랑스 디종 외곽의 플롬비에르에서 온 당나귀는 아이를 살해한 죄목으로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당나귀는 콜라르라는 사형집행인에 의해 서쪽으로 12km 떨어진 마을로 끌려갔다. 당시 사형집행인인 콜라르라는 처형에 대한 여행 경비 등을 공식적으로 받았다.
이보다 훨씬 먼거리에서 사형집행인을 초청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1393년 비귀외는 브장송에서 몽보송까지 약 35km를 여행했다. 1403년 일드프랑스 즉 현재의 빠리의 사형집행인은 망트까지 50킬로미터를 여행했다. 사형집행인은 공식적으로 왕의 명령에 의해 집행했다. 1386년 요한 드 비멘은 80킬로미터를 여행하여 양모 상인의 손자를 죽인 돼지를 처형한했는데 이 당시 50킬로미터나 80킬로미터는 매우 먼 거리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사형집행관으로 나선 요한 드 비멘은 귀족이다. 경비가 더욱 비쌌다는 뜻이다.
중세 후기에는 사형과 체벌이 국가 및 기타 공권력의 전유물이 되면서 전문 사형집행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그런데 동물의 처형은 사람을 처형하는 것보다 간단치 않다. 동물을 감옥에 가두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며 전문적인 장비도 필요하다.
우선 동물을 처형 장소로 데려가는 수레, 교수형을 위한 밧줄, 사형집행인을 위한 장갑은 물론 처형 때 입을 옷 등도 포함된다. 황소나 돼지는 개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적혀있는데 여기에서 사형집행인용 장갑은 동물 처형 때에 특별히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처형할 때도 지급되었다. 장갑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사형집행인은 깨끗한 손으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유죄 판결을 받은 동물이 일시적으로 법 내에서 인간과 유사하고 심지어 범죄적인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사형집행인이 사형수를 살해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예산이 드는 것은 처형에 필요한 교수대를 정비해야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교수대를 수리하는데 5명의 목수가 2일 정도 작업해야 했다는 이들 경비가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1404년 루브르에서 한 아이를 죽인 세 마리의 돼지를 처형하기 위해 당시 마을에서 우선 순위 1번으로 교수대를 제작했다고 적었다.
화형은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되었다. 마녀로 판결받은 마녀의 화형 집행을 위해 나무 수레, 짚, 통나무, 밧줄, 쇠사슬, 장갑을 준비했다. 그런데 동물의 화형 처형도 이와 다르지 않으므로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다.
네발 동물을 처형하는 것이 간단치 않지만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이들 작업을 각 지역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로 처리했다. 동물을 재판하기 위해 공정한 사법 절차를 진행하고 처형장소로 공공광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당대에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는 뜻이다.
사형집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는 슈바인푸르트 시의 사형집행인이 사형 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아이의 귀를 물어뜯은 돼지를 교수형에 처했는데 그는 사형집행 절차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총알같이 도주해야했다.
<한국에서도 동물 재판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동물 재판이 있었는데 태종 때의 코끼리 재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코끼리재판은 『태종실록』에 등장한다. 1411년 태종 때 코끼리가 들어왔다. 원래 베트남 지역의 남만과 일본이 수교를 맺으면서 남만이 선물로 일본에 코끼리를 주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조선의 ‘고려대장경’을 요청하며 코끼리를 조선에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당시의 글은 다음과 같다.
① 『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2월 22일
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
②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2월 10일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302) 을 바치므로 3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③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1월 5일
병조 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進言)하였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故事)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살인범인 코끼리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는데 궁궐에서 열린 살인사건이므로 정승이 재판관이 되고 병조판서가 검사를 맡았다.
처음엔 사형을 구형하려 했으나, 코끼리는 영물이라는 말이 있고 일본왕의 조공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귀양을 보내라고 선고했다. 궁궐에서 쫓겨나 귀양을 간 곳이 전라지방의 노루섬,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다.
④ 『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5월 3일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瘦瘠)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⑤ 『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3월 14일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公州)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되어, 하루에 쌀 2말, 콩 1말 씩이온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하였다. 선지(宣旨)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하였다.
이후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 후의 코끼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참고적으로 일본에서 코끼리를 선물 보내면서 대장경을 요청하자 조선이 15세기 말 일본에 일부 고려대장경이 보내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오키나와의 유네스코세계유산인 수리성 인근의 천녀천에 보관했는데 불행하게도 1609년 화재에 타버렸다고 한다.
참고문헌 :
「법 앞의 벌레와 야수」, 니콜라스 험프리, Public Domain Review, 2011.03.28
「판타스틱하게 틀렸다: 동물을 재판에 회부하고 처형한 유럽의 미친 역사」, Matt Simon, WIRED, 2014.09.24.
「사회가 동물을 재판할 때」, 소냐 바톰스키, JSTOR Daily, 2017.09.13.
「이상하지만 심각한 중세 동물 재판은 캥거루 코트가 아니었습니다!」, Wu Mingren, Ancient Origin, 2019.05.31.
「중세 프랑스의 동물 범죄화: 처형 기록의 통찰력」, 레슬리 베이츠 맥그리거, Medievalists.net, 2019.05.31
「돼지는 시도 할 수 있습니다」, Alexander Lee, History Today, 2020.11월
「위험한 개 안락사 결정, 과학적 판단 필요합니다」, 고은경, 한국일보,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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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istory.co.uk/articles/the-law-is-an-ass-8-famous-animal-trials-from-history
『세계 상식백과』, 리더스다이제스트, 1991
『상식 속의 놀라운 세계』, 두산동아, 1996
『갈릴레오에서 터미네이터까지』, 에이드리언 베리, 하늘연못, 1997
『클라시커 50 재판』, 마리자겐슈나이더, 해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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