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태형 300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 I, 재위 기원전 486∼기원전465)가 다르달네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를 공격할 때 부교 설치하는 도중 태풍이 불어 수많은 병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물에 빠트려 죽인 데 대한 벌로 바다에 태형 300대를 선고했다.
‘이 못된 반역자야! 네가 허락하건 안 하건 크세르크세스 왕이 너를 건널 것이다.’
바닷물에 태형을 때려서인지 바다가 잠잠하여 예정대로 부교를 설치한 후 다르달레스해협을 건너 페르폰네소스에 도착 본격적으로 그리스 공략에 나섰다.
크세르크세스는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리우스 1세와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 사이에서 태어났고 기원전 486년 10월 다리우스 1세가 죽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당시 페르시아와 견줄 수 있는 국가는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이 있었는데 이집트를 정복하고 바빌로니아의 반란을 제압할 때 신전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바빌로니아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황금 신상 마르둑도 파괴했다. 마르둑을 파괴한 것은 바빌로니아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데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이 세계를 정복한 왕이지만 이집트, 바빌로니아 왕이라고는 칭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칭호를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왕’으로만 표현했다.
세계를 평정했다고 생각한 크세르크세스이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한이 있었다. 다리우스 1세가 끝내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정벌이다. 다리우스가 생전에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게 패배하였는데 이를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원전 484년부터 481년까지 모든 영토로부터 병력을 징발하고 해군 수송선단을 건조하는 등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가 170만 명을 동원했다고 적었지만 현대 학자들은 대체로 10~20만 명으로 추정한다. 물론 그리스보다는 엄청 많은 병력을 동원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하튼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80년 친히 대군을 이끌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그리스 도시국가간에 내분이 일어나 아테네 등 강력 도시국가들은 병력동원을 거부했다. 결국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정예병 300명·노예병 7,000명과 최초로 전투를 벌였다.
당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300명의 정병으로 크세르크세스의 대군과 맞섰는데 놀랍게도 초기 전투는 레오니다스의 승리이다. 스파르타가 역사상 최강 전투진형이라는 그리스의 환타생밀집방형진으로 크세르크세스의 대군과 좁은 길목에서 맞섰기 때문인데 이때 스파르타에 반하는 밀정이 테르포필레의 후면으로 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려주는 통에 전멸한다.
전투 결과로만 보면 이번에도 페르시아의 공격은 실패했다.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를 물리친 크세르크세스는 아티카와 무방비의 아테네까지 점령했으나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그리스 해군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했다. 크세르크세스가 일단 페르시아의 수사까지 후퇴한 후 이듬해 다시 도전했으나 플라타이아 전투에서도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하여 결국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78년에 끝났다.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을 패배에 몰아넣은 바다에 채찍질하고, 달군 쇳덩이를 던지고, 자신의 아들을 병역에서 빼려고 한 신하의 아들을 능지처참시키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적었다.
그런데 당대의 제왕이라 자부하던 크세르크세스가 바다를 채찍질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가 대군을 이끌고 다르달레스 해협을 건너려고 부교를 놓았는데 폭풍으로 부서졌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는 부교를 다시 만들라 명하는 한편, 감히 왕 중의 왕인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괘심죄를 바다에 적용한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벌인 페르시아와 그리스 전투가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당대의 집권자로 볼 때 자신의 패배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패배가 인간의 행동 즉 적군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폭풍을 일으킨 바다야말로 괘심죄에 걸릴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만사의 문제점이 바로 자신으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런 맥락에서 중세시대에 수많은 곳에서 벌어진 동물 재판은 매우 흥미롭다. 크세르크세스처럼 그리스 정복을 무산시킨 대형사건에 대한 응징 차원은 아니지만 인간 세상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무언가의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인간 공격>
2012년에 출시된 영화 「하울링」은 매우 독특한 소재를 주제로 했다.
‘의문의 연쇄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데 단서는 짐승의 이빨자국뿐이다.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살인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시한벨트발화장치에 의한 계획된 살인임을 알아낸다. 결국 범인이 알려지는데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다.’
물론 늑대개의 배후에 진짜 인간 범인이 있다는 뜻이지만 이처럼 범인이 동물인 경우 골머리 아파진다. 사실 세계적으로 동물에 의한 인간의 피해는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지만 말을 못하는 동물을 인간으로 간주하여 처리한다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2008년 2월 22일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집에서 기르던 도사견 2마리가 박모 씨를 물어 숨지게 했다. 이때 개 주인은 관리 소홀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는데 이는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동물은 제거된다. 그런데 2021년 05월 경기도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이 대형견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반려동물이 사람을 해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느냐로 매우 큰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동안 수많은 토론을 거친 <국내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고 외출했을 때 주인에게 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려동물 중에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주로 반려견인데 반려견이 사람을 공격해 죽게 한 경우에는 과실치사가 적용되어 주인은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이후 법개정이 이루어져 2021년 2월부터 반려견 중 맹견으로 분류되는 맹견의 소유자는 맹견으로 인한 물림 사고가 발생 시 원활한 배상을 위해 '맹견 소유자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도록 의무화되었다.
동물보호법상에 명시된 맹견은 ① 도사견 ② 아메리카 핏불테리어 ③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 ④ 롯드와일러 ⑤ 스태퍼드셔 불테리어와 그 교잡종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남양주에서 사람을 죽인 개는 5대 맹견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사람을 죽인 범인 즉 개가 확실한데 현행법은 개에게 안락사를 권할 수 있지만 필수 사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초 남양주시가 사고를 낸 개를 안락사할 것으로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제기되자 경찰은 동물보호법에 사고를 낸 개의 조치에 대한 조항이 없으므로 일단 경찰 수사 종결 때까지 안락사 결정을 미룬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껄끄러운 내용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동물은 반려견을 포함하여 제거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개가 사람을 물면 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처형해야 한다. 이는 개의 광견병 감염 여부 때문이다. 사람을 문 개는 무조건 광견병 감염 여부를 검사토록 규정되어 있는데 광견병 검사를 하려면 뇌(brain)조직 샘플을 채취해야 한다. 산 채로 뇌 샘플을 확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견병 검사를 하면 거의 전부 광견병 비감염으로 판단되는데 일단 피해자가 생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안전 여부가 우선이므로 안락사를 기본으로 한다. 반려동물로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이 개와 고양이인데 키우는 사람 특히 개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남양주사건처럼 확실하게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고를 낸 개 보호자, 개에 대한 조처가 처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고견→안락사가 유일한 공식은 아니라는 설명이 발목을 잡았다. 더불어 사람을 문 개가 광견병에 걸린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겁토대상이다. 그러므로 사고견이 왜 공격성을 보였는지, 훈련이나 치료를 통해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등을 점검해 안락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그동안 반려동물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이 상당히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혜원 박사는 사고를 낸 동물을 무조건 안락사시킬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로부터 도출된 평가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개가 공격성을 보일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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