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비밀(4)
<텔로미어와 암>
텔로미어가 수명과 관련된다는 것은 1986년 하워드 쿡 박사가 처음으로 체세포의 텔로미어가 정자세포보다 짧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부터다. 전세계 노화연구가들은 이 이상한 현상에 주목했다.
보통 세포가 분열할 때 새로운 세포 안에는 이전과 똑같이 복제된 유전질이 형성된다. 그렇게 해서 새 세포는 이전 세포에 담겨 있던 모든 정보를 지닌다. 그런데 텔로미어는 예외로서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작아진다. 더구나 텔로미어가 어느 정도까지 작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노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세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생식세포, 즉 난자와 정자 및 암세포는 세포분열의 한계인 노화나 죽음과 크게 관계가 없다. 특히 과학자들은 암세포의 경우 정상세포와 달리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 말단 부위, 즉 텔로미어의 길이가 전혀 짧아지지 않으며 정상세포와는 달리 세포분열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암세포에서는 정상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가 정상 이상으로 높게 나타나는 점도 포착했으며 노화현상을 거의 보이지 않는 바닷가제나 무지개송어는 바로 이 텔로머라제가 세포 속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학자들은 다양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체외에서 ‘세포주(cell line)’를 이용해 기초 연구를 시작한다. 세포주는 균일한 조직에서 유래된 세포 집단으로 동일한 유전적 특성을 가지는 세포 계통을 말한다. 장기간 배양해도 균질한 유전자형을 갖는 특징이 있는데 현재 세포주에는 유한한 세포주와 불멸화된 세포주 등 두 가지가 있다.
유한한 세포주는 20〜80번 이상 세대가 반복되면 돌연변이가 축적돼 처음의 것과 달라진다. 그런데 불멸화된 세포주는 이론적으로 무한정 복제를 해도 구성이 같은데 이를 보편적으로 암세포주라 부른다.
암에 대한 연구는 놀랍게도 영원히 안 죽는 헬라세포(HeLa Cell)가 등장했는데 이것의 속성은 바로 암세포다. 1951년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는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치료받을 때 그녀의 세포 조직이 조지 오토가이(George Otto Gey)의 연구실로 옮겨졌다. 그녀는 31살에 사망했지만 그녀의 세포가 의사들이 본 기존의 세포들과 달라 세포는 빠르게 성장했으며 몸 밖에서도 계속 살아남자 이를 ‘불멸 세포주’라고 부르며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인 세포 생존 조건이 맞는다면 배양 접시에서 무한정 분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헬라 세포는 거의 반세기 이상 바이러스학, 암연구, 분자생물학 등 주요 생물학 등의 연구 재료로 널리 사용됐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54년 바이러스학자였던 조너선 소크(Jonas Edward Salk)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다. 이후 암, 에이즈, 결핵을 비롯해 유전자 지도 작성, 독성물질, 방사능 영향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됐다. 심지어 무중력 상태에서 인간 세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하기 위해 헬라 세포를 우주로 보내거나 원자폭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핵폭탄과 함께 터뜨리기도 했다.
헬라세포가 얼마나 많이 현대 의학용으로 사용되었는가는 2009년 기준 헬라 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6만 건이 넘는것으로도 알 수 있다. 레베카 스클루트 박사는 줄곧 성장하고 있는 헬라 세포를 전부 저울에 올릴 수 있다면 5,000만 톤 이상 나갈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증식한 헬라 세포를 모두 이으면 지구를 세 바퀴 이상 휘감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의학 분야의 발달로 현재 불멸 세포주는 헬라세포 뿐만 아니라 그 종류가 수백가지가 된다. 그러나 현재도 헬라세포는 아직도 계속 분열하므로 연구용으로 사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학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헬라 세포가 왜 무한 증식하는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초로 불멸의 세포주가 된 헬라 세포는 일반 세포가 아니라 헨리에타 랙스에게서 채취한 자궁 ‘암세포’ 조직이다. 헬라 세포가 다른 암세포와 비교해서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했는데 이유는 텔로머라제가 특별히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텔로미어가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조금씩 길이가 짧아지며 텔로미어가 지나치게 짧아질 경우 세포는 사멸의 길을 걷는다. 반면 텔로머라제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다시 늘려주는데 암세포에서는 텔로머라제가 매우 활성화되는데 헬라세포가 어느 암세포보다 텔로머라제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인간 세포의 염색체 수는 46개인데 헬라 세포의 염색체는 70개에서 164개까지 그 수가 많다. 또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조건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이 탁월해 무기물인 플라스크에서도, 유기체인 쥐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발달과 특성이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헬라세포에 대한 근래의 연구는 정말 놀랍다. 정말로 암세포주 헬라세포가 무한정 배양해도 정말로 처음처럼 똑같을까하는 점이다. 미국 하버드의대 토드 골럽(Todd Golub) 박사는 106개의 사람 암세포주를 유전적으로 분석해 그 다양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연구를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유방암 세포주인 MCF7에선 유의미한 변화가 생긴 27종류의 변종이 발견됐다. 비슷한 현상이 총 13개의 암세포주에서 확인됐다. 이어진 실험에서 연구팀이 27가지 변종 MCF7 세포주에 321가지 항암물질을 처리하자 75%의 항암물질의 효과가 감소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실에서 우리는 특정 환자에게 잘 듣던 항암제가 어느 순간부터 용량을 높여도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데 골럽 박사는 암세포주 역시 세대가 지날수록 돌연변이가 축적된다고 발표했다. 암세포에 대한 연구가 만만치 않음을 알려준다.
여하튼 암세포는 매우 이상한 세포다.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세포 분열의 빈도수를 결정하는 시계가 유전질 안에 들어 있을 것으로 추측했고 여러 가지 사실을 볼 때 세포 시계가 텔로미어에 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암세포 안에서는 이들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암세포 안에 있는 텔로머라제가 텔로미어가 작아지지 않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보면 역으로 텔로머라제 효소가 계속적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복원시켜 암이 점점 커지게 만든다는 놀라운 설명이 가능해진다.
학자들은 이런 설명은 암세포와 연결된 텔로머라제 효소를 억제한다면 항암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암을 퇴치하는 것은 물론 텔로미어가 작아지지 않는 것 즉 세포 분열의 회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③ 활성산소 이론
의학용어인 ‘유해산소’ 또는 '활성산소'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활성산소’는 짝 없는 전자를 소유한 산소의 중간 산물로 정상 세포의 대사 과정이나 외부의 자극에 의해 생성된다.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호흡 과정이나 음식을 소화하는 대사 과정에서 산소가 불완전 연소돼 나오는 일종의 찌꺼기가 활성산소다.
그러나 인체는 오묘하여 활성산소의 공격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방어기전이 가동되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활성산소를 무력화하는 항산화물질이 인체 내부에서 분비된다. 문제는 이 방어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활성산소의 생성량이 많아지면 인체는 손상을 받고 노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활성산소가 현대인 건강의 주적(主敵)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활성산소가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활성산소는 염증과 싸우고, 박테리아를 죽이고, 평활근육(인체 내부 기관과 혈관의 작용을 조절하는 근육)의 활동을 조절하는 등 적당한 활성산소는 세포의 정상 기능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학자들을 고민케 만드는 것은 활성산소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활성산소가 과다하게 만들어지면 활성산소가 세포 속 깊숙이 침투해 DNA를 운반하는 핵에 손상을 입히고, 그 결과 돌연변이가 일어나 암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또 활성산소는 세포의 구성 성분인 단백질, 지질 등에 산화 손상을 유발하게 되며, 이런 손상이 축적되면 노화현상이 발생한다.
세포가 사용하는 산소의 1〜2%는 활성산소가 되므로 과격한 운동을 하는 사람은 활성산소에 의한 노화도 더 빨리 진행된다. 그러므로 과격한 운동의 대명사라고도 볼 수 있는 올림픽 우승자들이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 부분에 관한 한 예외는 있다. 마라톤 선수가 가장 많은 산소를 마셔야하는데 마라톤선수는 비교적 장수한다. 학자들은 마라톤 선수의 폐활량이 남다르게 크기 때문으로 추정하는데 베르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도 장수했다.
<인간의 수명은 100세 주위>
노화에 관한 한 학자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도 계속 발견되었다.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나누어진다. 학자들은 핵과 세포질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실험을 하였다. 노화된 핵과 젊은 세포질을 합성하면 그 합성세포는 젊어질 것인가, 아니면 노화될 것인가? 실험결과 노화된 핵과 젊은 세포질을 조합할 경우 불행하게도 합성세포는 노화되었다. 이 결과는 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단 노화한 세포인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회복시킬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암도 곧 정복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은 100∼120년 정도가 한계 생명일까? 아쉽게도 많은 학자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유엔(UN)이 발표한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100세 이상 인구는 1990년 9만 명을 시작으로 매년 급증했다. 2000년에는 15만 명, 2010년에는 30만1천명, 2015년에는 43만 명이 되었다. UN은 지구촌 100세 이상 인구가 2030년 처음으로 100만 명에 도달한다고 예측했다. 이어 2045년에는 230여만 명을 기록한 뒤, 2050년에 들어서면 316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계 수명을 100∼120년 정도로 추정하는 것은 전 지구인이 100살을 넘긴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지구인을 약 80억 명으로 추정하면 더욱 그러하다.
학자들이 이렇게 예상하는 것은 인간의 수명을 고무줄처럼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에 있는 생물체는 지구 표면에 있는 수많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원소를 살펴보면 탄소·수소·질소·유황·인 등이 있고, 철·칼슘·마그네슘 등의 금속 이온도 있다. 물론 어느 원소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그 중 탄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학자들은 생체 구성물의 기본골격은 탄소이며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원소라고 할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탄소로 만든 생체 재질의 사용 기간을 대략 100년 정도라고 추정한다. 결국 사람의 수명은 자원적인 면으로도 100년을 초과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생물의 기본을 구성하는 탄소가 생명력을 잃는다면 생물이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식물의 경우 수천 년을 살 수 있다지만 인간이 식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규소 원자도 생물을 만들 수 있으므로 어쩌면 외계인들은 탄소 대신 규소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인간의 생명을 100세 정도로 확정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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