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3대 성유물

예수의 3대 성유물(15)

Que sais 2021. 9. 5. 07:10

https://youtu.be/OAQxQp6QR0s

모세의 언약궤, 솔로몬의 보물 발견(2)

<몽세귀르성의 성배찾기>

무솔리니를 성공적으로 구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19442, 히믈러로부터 직접 프랑스의 몽세귀르에 있다고 알려지는 성배를 찾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SS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스코르체니에게 히믈러가 특명으로 세계적인 발굴에 직접 참여토록 한 것은 군대의 경력에서 다소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는 그만큼 히틀러와 히믈러성배에 대해 집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코르체니는 곧바로 소규모 특공대를 이끌고 랑그독루씰론에 도착해 몽세귀르 인근에 베이스캠프를 세웠다.

그는 오토란이 진행했던 성배 추적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오토란이 발굴을 실패했던 이유로 성배를 숨긴 도주로를 철저하게 추적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오토란이 지목한 여러 곳에 관심을 주지 않고 오로지 몽세귀르 성에 집중했다.

스코르체니가 착안한 것은 카타르 전사 34몽세귀르 성에 보관되어 있던 보물을 2주일간의 휴전기간 동안 옮겼는데 대체 이들이 이들 보물을 어디에, 얼마만큼 옮겼느냐이다.

스코르체니상식적으로 생각했다. 한마디로 34인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물량이라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보물의 양이 많다면 2주일을 계속 옮기더라도 그 장소는 몽세귀르 성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천혜의 장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투의 현장인 몽세귀르성 수직 벽에 착안했다. 몽세귀르 성이 특별한 것은 화산 심성암의 우뚝 솟은 화산 바위덩어리로 된 고도 1,207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정상에 세운 성이라는 점이다. 이곳에 접근하려면 한 면은 절벽이므로 나머지 세 면에서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은 곳 바로 깎아지른 절벽에 집중했다.

 

몽세귀르성

피레네 산맥의 랑구독루씰론 지역동굴이 많기로 유명한데 몽세귀르 수직 벽동굴이 있다면 이곳이야 말로 당대의 긴박한 정황을 볼 때 보물을 은익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것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일반인들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코르체니는 특공대원으로 산악 등정에 일가견이 있었다.

문제는 보물을 은폐할 수 있는 동굴이 있느냐인데 몽세귀르 성에 동굴이 수많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십자군몽세귀르 카타르 수비대를 공격할 때 바스크 족의 절벽 공격이 주효했다고 적혀져 있으므로 십자군들이 모르는 곳 즉 동굴의 어디엔가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스코르체니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는 수직 암벽을 하강하여 절벽에서 고대 흔적 즉 벽으로 둘러싸인 동굴과 보물을 발견했다. 스코르체니가 고고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자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발견한 보물 중에는 전설 속의 기독교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코르체니가 몽세귀르 함락 700주년 기념일(1944316) 전날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발견을 히믈러에게 보냈는데 단 한 단어.

 

유레카(찾았다)!’

 

히믈러는 곧바로 축하한다며 다음날 자신이 직접 방문하겠다고 회답했다. 다음날 히믈러 자신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알프레드 로젠베르그 독일 총리, 아네네르베의 볼프람 시베르 대령으로 구성된 공식 대표단이 도착하여 스코르체니를 축하해주었다.

그들은 스코르체니의 안내로 보물 은닉처를 방문했고 인근의 메르커스 마을로 보물들을 이동시켜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보물 목록을 작성했다. 그들이 적은 기록만 보아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 수천 개의 금화.

2) 한 때 모세의 언약의 궤로 보이는 금판과 나무 조각,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지는 물건, 금도금 상, 일곱 가지가 있는 촛대 메노라(Menorah), 금 항아리, 지팡이, , 무수히 많은 금판과 그릇, 여러 개의 작은 금종과 여러 개의 보석과 마노석, 비문.

3) 해득이 어려운 룬 문자 이전의 글로 적힌 12개의 돌판으로 된 비문.

4) 에메랄드 받침대가 있는 벽옥으로 만든 아름다운 은빛 컵. 설형문자로 적혀있는 세 개의 금판이 있는 컵.

5) 다양한 유형의 수많은 종교적 물건, 진주보석으로 장식된 여러 시대의 십자가.

6) 여러 모양과 크기의 많은 보석

 

스코르체니가 발견했다는 모세의 언약의 궤와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몽세귀르성에 도착한 지 단 한 달 만에 세계적인 발견을 한 것이다. 일반 고고학자들이 평생을 거쳐 투입해도 변변한 발견조차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문고고학자도 아닌 철저한 SS대원 스코르체니에게 그야말로 영광의 순간이 아닐 수 없는데 그는 이를 오히려 자신의 경력에서 자랑할 업적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이 대발견에 대해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약궤 행진

바로 이점이 고고학자들에게는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면이다. 자신이 세계적인 발견을 했다면 그에 대한 관심을 갖고 무언가 자취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상식인데 그는 보물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게는 보물 발견은 그의 화려한 군인 경력 중 단 2달에 걸친 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의 발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성경의 기록으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모세시나이 산에서 40일 동안 머무르며 신에 의해 성막과 언약궤의 환상을 보았고, 그가 가지고 내려온 2개의 석판을 보관하기 위해 언약궤를 직접 제작. 세로 2.5 큐빗, 가로 1.5 큐빗, 높이 1.5 큐빗이다.

궤 전체에 얇은 금박이 입혀졌으며, 황금 장식들이 옆에 붙어 있어 신성함을 더했으며 4개의 황금 고리가 양 옆에 각각 2개씩 달려 있어, 나무장대로 이를 운반할 수 있었다. 한편 언약궤푸른빛의 성막으로 감싸져 사람들이 함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언약궤모세가 직접 제작한 후 40년 동안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에 의해 황량한 광야를 떠돌았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후계자라고 볼 수 있는 여호수아의 인솔로 요르단 강 어귀, 약속의 땅에 도착했고 예리코 전투에서 사제들은 6일 동안 언약궤를 메고 예리코의 성벽 주위를 하루에 한 번씩 돌자 7일째 되는 날, 예리코의 성벽이 스스로 무너졌다고 한다.

언약궤는 우여곡절을 거쳐 다윗 왕에게 전해지는데 그가 언약궤시온 산으로 옮기던 중, 언약궤를 운반하던 한 인부가 우연히 언약궤에 손을 대어 신의 진노를 사 번개에 맞아 즉사했다고 한다. 여하튼 다윗언약궤를 시온산에 안치했고 언약궤를 보관하기 위해 거대한 신전을 지으려 했으나 신의 계시를 받아 공사를 중지했다고 한다.

다윗이 사망하자 아들 솔로몬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언약궤 앞에서 기도하다고 잠이 들었을 때 그의 꿈에서 신을 만나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솔로몬은 이를 기리기 위해 다윗이 중단한 성전 공사를 재개하였다. 성전에는 언약궤를 보관하기 위한 특별한 방이 준비되었고 언약궤 안모세의 십계명을 새긴 석판 2를 함께 보관했다고 알려진다. 바로 이 모세의 언약궤와 솔로몬의 보물스코르체니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솔로몬과 시바

물론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것이 정말로 모세의 언약궤이고 솔로몬의 보물이냐라는 것은 아직 미정이다. 우선 티오피아의 악숨모세의 언약궤와 돌판이 보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이야기는 시바 여왕과 솔로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솔로몬과 시바의 아들 메넬리크가 아버지 솔로몬을 예루살렘에서 만났다. 솔로몬메넬리크에게 왕권을 물려주길 원했으나 메넬리크는 고심 끝에 거절하고 에티오피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때 솔로몬이 유대교 사제 64명과 12,000명의 젊은이들을 함께 보내 줬는데 한 사제가 모세의 언약궤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며, 그것을 훔쳤고 순식간에 악숨까지 이동했다는 것이다. 언약궤는 현재도 4세기 무렵 악숨의 이자나(Ezana) 이 세웠다는 악숨의 시온의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 보관되어 있다.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알려지는데 이곳에 보관된 보물들과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언약궤와 솔로몬의 보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이지만 이 문제는 실물이 나타나는 순간 판명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답이라는 뜻이다.

여하튼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보물들은 목록이 작성되자 총알같이 이들 행방이 결정되었다. 금화들은 녹여서 금괴로 만들었고 보물들은 여러 파트로 나누어 각지로 분산시킨 것이다.

이후 몽세귀르성이 있는 메르커스 마을을 포함하여 프랑스의 랑구독 지역은 미국 조지 패튼 장군 휘하의 미3에게 함락되었다. 패튼의 부하들이 독일군의 유물 발굴을 포착하였고 스코르체니가 유물들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켰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군이 스코르체니의 행적을 추적하여 몽세귀르성 인근에 있는 소금 광산을 찾았는데 그곳은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유물 중 일부를 보관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발견된 양만해도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압수된금괴를살펴보는아이젠하워

소금광산에서 발견된 유물이 얼마나 큰 주목을 받았는가는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장군, 오마르 브래들리 장군, 조지 패튼 장군들이 이곳을 직접 방문하여 보물들을 직접 관람했다. 소금광산에서 압류한 물건은 다음과 같다.

 

‘600개의 금괴, 750개의 금화 자루. 주로 지폐 형태의 기타 많은 귀중품

 

이들 보물의 추정가치가 얼마인가가 주목 대상인데 1945년 기준으로 무려 25천만 달러였다. 부에쉬너(Buechner) 박사는 현재 가치로 보면 약 6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단 한 곳에 저장된 보물만 이 정도이므로 스코르체니가 발견한 양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스코르체니발굴 사상 최고로 인식하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전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이집트의 파라오의 계곡에서 발견된 투탕카문 파라오의 보물을 능가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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