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예수)수의의 비밀(7)
<그래도 못믿겠다(2)>
러시아의 과학자는 1532년에 있었던 화재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C14의 잔존량을 늘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는 매우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후대에 직조된 샘플이 우연히 실험 샘플에 포함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야말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수의 사진을 찍은 베리 슈워츠(Barrie Schwortz) 박사는 수의가 세마포와 면이 한 가닥씩 눈에 보이지 않는 직조법으로 엮여있다고 말했다. 우선 당시 토리노 성당의 신부가 시료로 자르라고 지적한 부분의 색상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종류의 실이 한 가닥씩 엮어있었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다른 물질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 로저스 박사는 보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이 시료를 <로스 알라모 내셔널 연구소>에 의뢰했는데 밥 빌알리엘 박사는 시료를 받아 조사를 하려고 현미경에 얹는 순간에 시료가 부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세마포하고 면하고 붙여서 중간에 연결 부분을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접힌 부분이 힘이 없어 부러졌다고 설명했다.
배리 슈워츠 박사는 실제로 1532년 성당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수의의 일부가 손실되었으므로 이를 보수했으므로 두 개의 실이 꼬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시 짠 천이라는 것이다.
시료에서 염료에 사용되었던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세마포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노랗게 변색된다고 알려진다. 그 위에 새로운 세마포를 덧대면 표시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마포를 염색하여 덧대면 되는데 세마포는 거의 염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면을 염색하여 덧대었다는 것이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직조법을 이용하여 기존 세마포 한 가닥과 노랗게 염색한 면 한 가닥을 엮어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다른 부분 세마포 부위에서는 도료나 염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샘플에서는 고무 성질의 염료가 검출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즉 고무와 비슷한 물질로 몇 세기 동안 염료에 사용되던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수의에서 측정에 사용된 시료가 염색된 적이 있다는 독립적인 증거인데 수의 본체는 염색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특히 연대측정에 제공된 시료의 제공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처음에 시료를 측정하기 위해 각 부분에서 시료를 조금씩 자르기로 했는데 신부가 허락하지 않고 수의의 끝 부분을 채취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레이 로저스 박사는 탄소연대측정 기기 자체의 신뢰성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수의에서 손상된 부분을 가지고 실험했다는 것이다. 즉 실험에 사용된 시료 부분만 염색, 송진, 고무로 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1988년 연도조사에 제출된 수의 조각은 수의 자체가 아니라, 수의를 수리하려고 기워놓은 중세의 천조각이라는 것이다. 또한 수의를 분석하면 십자가형의 상처자국으로 보이는 형상이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나 있는데, 중세 때에는 십자가형으로 처형될 때 손바닥에 못을 박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중세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면 당연히 상처자국이 손바닥에 나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므로 최소한 중세의 위작은 아니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결론은 최악의 샘플로 실험을 했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테스트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DNA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빅터 트라이온 박사가 수의에서 AB형 혈액형을 갖는 남성의 혈액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유전자도 채취하였다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물론 그는 수의와 접촉한 사람의 침이나 땀, 눈물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있지만 수의 주인의 DNA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곧바로 허위임이 증명된다. 토리노 성당에서 연대측정을 위해 소규모로 수의가 잘려진 이래 단 한 번도 연구를 위해 반출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근래 제시된 의문점은 실험 시료를 측정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할 때 촬영한 영상 자료의 문제점이다. 토리노 성당 측에서는 시료 채취시 일어날 수 있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료를 절취하고 이를 세 곳의 연구기관에 전달하는 8시간에 걸친 모든 동작을 남김없이 촬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볼 수 있는 시료 전달할 때 찍은 30분의 영상 자료가 누락되어 있었다. 이때 시료가 바뀌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지적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만약 시료의 바꿔치기가 정말로 일어났다면 이는 수의를 가짜로 만들어야 할 당위성이 있어야 하며 그 당사자는 토리노 성당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토리노 성당에서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수의를 왜 가짜로 판명되기를 원하는가이다. 이런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수의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2009년 교황청 기록보관소의 바르바라 프랄레 연구원은 토리노 수의에 새겨진 문자를 컴퓨터로 판독한 결과, 수의가 진품임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수의에 남아 있던 문자는 그리스어로 ‘나사렛 예수’라는 의미였는데, 중세 시대에는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해 감히 그런 표기를 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글자 판독 주장은 가톨릭계 내부에서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짜의 증거>
수의의 연대측정에 대해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어 반박하자 수의가 가짜임이 분명하다고 또 다시 반론이 제기되었다. 다소 1988년 발표와는 상당히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월터스 박물관의 게리 비칸 박사는 2020년 『흑사병 시대의 화려한 사기, 거룩한 수의, The Holy Shroud, A Brilliant Hoax in the Time of the Black Death』에서 보다 철저하게 수의에 대해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수의는 사기라는 것이다.
그는 토리노의 수의가 실제로 유럽에서 흑사병이 번창할 때 왕실의 뛰어난 예술가가 만든 중세 프랑스 인의 사진과 같은 바디 프린트라고 혹평했다.
그는 우선 수의의 역사 기록이 유럽을 강타한 대재앙 직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에 유럽을 휩쓸었는데 당대 흑사병은 지역에 따라 사망률이 30〜90%였고 대체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했다고 알려진다.
이 수의는 1357년경 조프푸아 드 샤르네가 리레에 조그마한 목조 교회(Our Lady of Lirey)를 건립한 후 일반에게 공개했는데 이때는 바로 흑사병이 기승을 부리던 시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게리 비칸 박사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예수의 수의라는 말 자체에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 사상 가장 신비스럽고 강력한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토리노 수의는 기독교인들이 찬탄하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우선 남자 몸의 앞뒤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이는 잔인한 처벌의 이미지가 보인다. 열상과 채찍의 흔적이 있고 예수의 오른쪽 가슴에 피 묻은 상처가 보인다. 수의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른 흔적도 보인다.
비칸 박사는 더욱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는데 현재 예수의 수의로 알려진 다른 매장 천에도 이미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토리노 수의만 특별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토리노 수의가 다른 천과는 달리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은 바로 1898년에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자체는 1826년 니엡스에 의해 발명되었으므로 당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계 중 하나이므로 곧바로 예수를 찍은 사진이 분명하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수의가 계속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성유물 즉 성배나 롱기누스창과는 달리 기적을 행하는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수의의 이미지 자체를 기적이라고 믿으므로 한마디로 수의를 보는 자체가 충격적인 기적이라는 뜻이다.
이후 수많은 호사가들이 수의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들을 창조해냈다고 지적했다. 수의의 사진에 렙톤이란 동전이 발견되어 수의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하지만 비칸 박사는 단호하다. 예수시대의 매장에서 렙톤을 사자의 눈에 놓는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게리 비칸 박사는 맥스 프라이가 1973년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하여 꽃가루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을 양심불량으로 돌렸다. 맥스 프라이는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본 꽃가루가 봄철에 성지에서 나타나는 꽃가루라고 말해 수많은 수의 숭배자들을 감격케 만들었다. 그런데 비칸 박사는 봄철에 프랑스에서도 그런 꽃가루가 나타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듀크 대학교에서도 수의에 희미한 27가지 종류의 꽃이 유대에서만 발견된다고 발표했는데 이들 꽃들은 미국 남부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꽃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의의 신빙성에 가장 큰 증거가 된 프라이 박사의 꽃가루 분석에 대한 지적에 비칸 박사는 한가지 더 부연했다. 프라이 박사의 꽃가루 분석을 통해 수의의 직물이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꽃가루의 연대를 밝힌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1988년 대영박물관에서 발표된 연대측정 연대에 대해 비칸 박사는 간명하게 대답한다.
수의는 1357년경 조프푸아 드 샤르네가 리레에서 선전하기 약 30년 전에 수확된 아마로 만든 아마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을 한다. 그럼에도 수의의 연대를 중세시대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자이든 아니든 기독교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예수의 3대 성유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의 3대 성유물(28) (0) | 2021.09.06 |
---|---|
예수의 3대 성유물(27) (0) | 2021.09.06 |
예수의 3대 성유물(25) (0) | 2021.09.06 |
예수의 3대 성유물(24) (0) | 2021.09.06 |
예수의 3대 성유물(23) (0) | 2021.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