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의 비밀, 과학으로 본다

사리의 비밀, 과학으로 본다(6) : 한국의 진신사리

Que sais 2021. 7. 20. 07:22

https://youtu.be/1WGijH4ZTZ8

2. 승사리

한국에서 '사리'라고 할 때 대중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승사리이다.

사리는 다비전의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다비 후의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사리 중에서 특이한 것이 전신사리 혹은 등신불이다.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부패하기 마련인데, 일부 스님들이 미라화했다는 것은 그 정도로 법력이 강한 스님이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고승 중 고승이 입적하면 명상하는 자세로 몸을 굽혀 소금을 채운 항아리에 넣고 3년간 보관한다. 3년 후 기일을 정해 항아리를 열었을 때 시신이 손상되었으면 화장하고, 시신이 온전하면 옷칠을 한 뒤 금을 입혀 완성한다. 한마디로 그대로 전신이 사리가 된 것으로 이러한 경우를 육신불 또는 등신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달마 대사로부터 법을 이어 받은 6조 혜능 대사가 최초로 온몸 자체가 사리가 되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신불은 신라인 석지장(釋地藏, 630729) 스님이다. 불교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도 석지장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석지장은 신라 왕족으로 속성(俗姓)은 김(), 호는 교각(喬覺)이다.

 

김교각 스님 등신불

당나라 고종 영휘 4에 출가 후 하얀 개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왔다. 구화산에서 수행도장을 건립했고 개원 16(729) 당시 99세로 입적했다. 시신은 함속에 앉은 상태였는데 3년 후 열어보자 얼굴이 생전과 같았고 관절을 움직이자 마치 금사슬을 흔드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대로 전신이 사리가 된 것이다.

김교각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구화산에서는 석탑을 만들어 육신을 보존하고 김지장(金地藏)이라 존칭하였고 그 전각을 육신전(肉身殿)이라고 명명했다. 김교각이 중국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여 중국 4대 불교 성지의 하나인 구화산 성지의 창시자이며, 또한 화엄경의 기초 위에 4부경을 편찬함으로써 자신의 불교이론을 정립하였다. 한편 중국에는 김교각 스님 이후 계속 등신불이 등장하여 석지장을 포함하여 10명의 등신불이 유명하다.

등신불 즉 전신사리를 제외하고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은 쇄신사리를 뜻한다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검은색붉은색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월하스님 다비식(사진 혜천스님)

한국 불교에서 사용하던 전통적인 다비법은 방법은 다음으로 알려진다.

땅 속에 거대한 물 항아리를 묻고 밀봉한 후 흙을 덮고 장작을 쌓고 승려의 유체를 얹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화장이 끝난 뒤 뼈를 수습하고 묻은 항아리를 파내면 그 독 안에 조그마한 보석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사리라는 것이다.

마곡사의 철환 스님은 사리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들었다사리는 불에 타지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고 물 속에 넣었을 때 가라않지도 않은 채 중간에 떠 있다는 것이다.

승사리를 모시는 구조물을 흔히 부도(浮圖)라고 부른다. 원래 부도(浮圖)란 말은 범어 붓다(Budd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불타, 부처와 부도는 원래 동의어.

과거에는 승려의 시신이라 하여 꼭 화장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고 그 위에 부도를 세우기도 했다. 1996년 전남 광양 옥룡사지(玉龍寺址)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도선의 부도라고 추정되는 유적에서도 부도 밑 석관에서 화장하지 않은 유골이 발견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이런 화장 안 한 시신사리로 간주한다.

 

<승사리의 보고 한국>

우리나라 역대 고승 가운데 사리가 나온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구산 스님의 53과를 필두로 1966년에 송광사에서 열반한 효봉 스님 34자운 스님 19탄허 스님 13학명 스님 10청담 스님 8혜운 스님 20금담 스님 4성철 스님의 스승인 동산 스님과 용성 스님이 각 2과의 사리를 남겼다.

 

성철 스님 사리

특히 1993 11 10,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조계종 성철 종정 다비식에서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가 나와 불교계와 일반인의 관심을 모았다성철 종정 장례 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성철 종정의 법골로부터 모두 110()의 사리가 최종적으로 수습되었는데 사리들은 콩알 크기로부터 쌀알 반 쪽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사리들은 정골(頂骨머리) 부분에서 5060과를 비롯법체의 각 부분에서 고루 나왔는데 분류하지 않은 정골과 재 속의 것 8090과를 합하면 공식 발표보다 훨씬 많은 모두 200과 가까이 된다고 발표했는데 이 숫자는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라고 알려진다.

 

벽암스님 연꽃무늬 사리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86, 2003년에도 정대스님으로부터 120과의 사리가 나왔고 좌탈입망(좌선한 채로 열반에 드는 것상태로 입적한 서옹 스님 4과가 나왔다정대 스님의 사리는 가장 큰 것이 지름 1.5센티미터나 된다고 알려졌다. 2005 5월에 입적한 벽암(碧岩스님의 몸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찿기 힘든 연꽃 모양의 사리가 수습되기도 했으며 2012지관 스님치사리(齒舍利) 5과와 구슬사리 3과가 나왔.

반면에 지난 1982년에 입적한 경봉 스님을 비롯만공스님 등은 사리를 남기지 않았으며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2004 11월에 입적한 조계종 원로 석주(昔珠봉은사 조실스님의 다비식에서도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고 2010년 입적한 법정스님도 자신의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하여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

스승의 유언을 철저히 실행항 실례가 문경 봉암사에서 입적한 서암스님의 예이다. 서암스님은 다비후 사리가 나올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리에 집착하지 말고 탑 같은 것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다비후 뼈를 조그만 항아리에 넣기 전 떨어지는 사리의 빨간색 흰색 푸른색 등 영롱한 사리들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암스님의 유언대로 영롱한 사리들도 뼈와 함께 쇄골되었다.

 

3. 법신사리

원래 탑은 안에 석가모니를 화장하여 나온 유해의 일부 즉 진신사리를 봉안했지만 진신사리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손발톱, 사용하던 발우 등을 봉안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법신사리(法身舍利)이다.

불교계에서는 부처의 몸은 금빛이나 보석의 색을 띤다고 알려져 부처의 몸과 색이 비슷하다는 보석을 진신사리로 대신하여 안치하였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 더 넓게는 불교의 가르침, 불법(佛法)이야말로 부처님의 또 다른 몸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같은 이치로 불법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도 또 다른 부처의 몸(사리), 법신사리로 인정되어 탑에 봉안했다. 탑 안에 불경을 안치하는 것이 대중화된 것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그런데 법신사리의 개념이 점점 넓어져서 보석이나 불경뿐만이 아니라 불상, 진언(眞言)이나 다라니를 적은 물건, 또는 불교의례에 사용하는 도구도 법신사리로 간주되었다. 현재 많은  불탑 안에서 발견되는 사리장엄구 안에 안치된 사리란 대부분 이런 법신사리이다. 우리나라 불탑들은 금강경이나 반야부 경전 등을 많이 법신사리로 불탑 안에 보관했다. 

 

길상탑 소탑


이러한 불경들 중 신라시대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즉 「무구정경」을 안치한 탑이 많은데, 불국사 석가탑이 대표적이다. 무구정경의 내용은 석가모니와 바라문이 대화를 할 때 석가모니가 '이 내용을 탑에 안치하고 예배하면 큰 공덕을 쌓으리라.'라는 것에 기인한다.  「무구정경」에 따르면 조그만 모형 소탑 77기를 만들어 안에  「무구정경」이 설한 다라니를 넣고 안치하므로  「무구정경」을 봉안한 탑에서는 소탑들이 함께 나오곤 한다. 석가탑 안에서도 목제 소탑들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소탑을 99기를 만들어 또 다른 다라니를 적어 넣어 안치하면 큰 공덕이 된다고 하므로 신라 진성여왕 9년(895) 건립된 해인사 길상탑(吉祥塔)에서는 아예 소탑을 99기와 77기를 따로 봉안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계산상으로 볼 때 총 176기가 나와야 하는데 현대의 조사에 의하면 157기가 나왔다는 발표다.
박경준 박사는 사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승려들의 승사리, 부처를 상징하는  물건, 불경과 불구 등을 모셔 불탑에 불사리로 봉안하는 이유는 단순하다고 설명했다. 부처의 사리가 아니더라도 사리를 부처님의 단순한 몸 또는 뼈를 의미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신앙심을 표현하는 자체가 사리와 다름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