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인정하는 성배(1)
아서왕의 전설이 기본적으로 성배 찾기로 설명될 정도로 중요성을 갖고 있는데 성배를 찾으려는 노력은 아서왕 뿐만 아니다. 서양사를 보면 과거 성배를 찾으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신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것은 성배의 전설을 철저하게 수배한 학자들이 진본 성배라고 주장하는 것이 200여개가 된다는 점이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다고 사용된 성배를 단 하나나 두 세 개로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성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학자들에 따라 성배의 근본 의미를 보면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은 많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수만 생각하더라도 예수가 생전에 수많은 포도주잔을 사용했을 것이므로 이까지 포함한다면 상당 숫자가 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개는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예수의 성배로 알려진 포도주 잔에 나름대로 이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교황청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성배도 있음은 물론이다.
<먹고 놀고 사랑하라>
현재 수많은 성배들이 나름대로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한 진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종교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배는 놀랍게도 지중해 스페인 발렌시아 성당에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발렌시아 성당과 인근인 프랑스의 몽세귀르에 진짜 진본이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들 지역은 까타랑으로 현재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이다. 발렌시아의 교회에 있는 성배는 실물도 공개되는 반면 후자의 성배는 비밀의 장소에 있다고만 설명된다.
그런데 이들은 영화 「인디아나존스」와 「다빈치코드」로 널리 알려졌다.
두 영화는 독일 나치시대에 성배에 관한 전문가 오토콜의 연구를 차용했는데 「인디아나존스」는 스페인 발렌시아 성당의 성배를 기본으로 하고 「다빈치코드」는 프랑스의 몽세귀르의 성배를 기초로 한다. 두 성배는 워낙 많은 에피소드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우선 발렌시아의 성배부터 설명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기독교인이 살아서 한 번은 꼭 찾아가보라는 성지로 알려진 곳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지중해 남부에 있는 발렌시아는 특이한 곳이다.
2010년 라이언 머피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로맨스 영화제목은 매우 특이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간단하게 말해 세상 살 맛을 잃은 젊은 여성 뉴요커가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에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훌쩍 1년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고 묻겠지만 유민호 기자는 ‘Eat Pray Love’가 아닌, ‘Eat Play Love’로 하는 것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라고 적었다. 한마디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가 아니라 ‘먹고 놀고 사랑하라(Eat, Play, Love)’가 마음에 닺는다는 뜻이다.
사실 서양 문화를 보면 ‘Pray=Play’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유민호 기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서양의 대표적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Play’의 요소는 바로 그리스 델피의 신탁에서 행해지던 종교의식, 즉 ‘Pray’를 기초로 하고 있다. 유럽 어디를 가도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반드시 종교유적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중심인 교회는 경건한 기도만이 아닌, 인간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노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유민호 기자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먹고 놀고 사랑하라(Eat, Play, Love)」로 원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런 곳이 있다는 뜻인데 유민호 기자는 이를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있다는 성배와 연결시켰다.
현재 교황청에서는 예수의 성배(聖杯), 즉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한 것으로 믿어지는 포도주잔을 발렌시아 교회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곳에 있는 성배를 예수가 사용한 것이 아닌, ‘사용했다고 믿어지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앞에 설명한 것처럼 성배가 발렌시아 외에도 무려 200여 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 성배가 기독교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성배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역대 교황이 스페인에서 성찬식을 할 때 반드시 사용하는 성배가 바로 발렌시아 교회의 성배다.
1982년 교황 바오로 2세, 2006년 베네딕트 16세도 발렌시아 성배로 성찬식을 거행했다.
매년 10월 첫째 목요일은 발렌시아 교회 성배를 직접 사용하는 성찬식이 이뤄지는데 이때 전세계에서 방문한 기독교인들로 발렌시아 중심지가 마비된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산타마리아 교회라고도 부르는데 로마 교황이 스페인에 올 때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다.
지중해 남부에 있는 발렌시아는 특이한 곳이다.
15세기 유럽의 ‘실크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당대의 실크거래소 건물인 ‘라 롱하 데 라 세다(la Lonja de la Seda)’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발렌시아는 17세기 네덜란드로 무역의 중심이 옮겨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무역항이었는데 이곳이 특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발렌시아가 갖가지 해산물과 쌀을 버무려 만든 스페인 볶음밥 ‘파에리아’의 온상지라는 점이다. 더구나 발렌시아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엘시드(El Cid)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엘시드의 성지>
2004년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대작인 「엘 시드 El Cid」에 등장하는 엘시드(Rodrigo Díaz de Vivar, 1043〜1099)의 본명은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로 회교도가 스페인 지중해 남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카스티야 왕국의 비바르(Vivar, 현 부르고스)에서 귀족 성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엘시드가 특별한 것은 당대의 귀족 중 귀족임에도 20세 전에 읽고 쓸 줄 알며 법전을 해석할 수 있는데 더불어 훌륭한 전략가이자 개인적으로 전사 중 전사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대 스페인의 정황은 그야말로 한치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페르난도 1세는 죽으면서 세 명의 아들들에게 왕국을 나누어 준다. 산초는 카스티야, 알폰소는 레온, 막내 가르시아는 갈리시아다. 큰아들 산초는 엘시드, 알폰소의 도움으로 갈리시아를 빼앗은 후 알폰소도 축출하고 단일 왕인 산초 2세로 등극한다. 스페인이 다시 통일되었는데 알폰소는 그에게 충성하는 알 마문의 톨레도로 망명한다.
그런데 스페인을 통일한 산초 2세가 아들 없이 사망하자 동생 알폰소가 새로 까스티야의 왕좌에 올랐는데 엘 시드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알폰소의 권유로 알폰소의 조카딸이자 오베이도 백작의 딸 히메나와 결혼한다. 엘시드는 히메나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이슬람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당시에 스페인은 회교도와 기독교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서로의 이해 타산에 의해 합치고 분리하는 것이 반복되는 상태로 기독교간의 싸움이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싸움보다도 많았다.
그런데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한 중앙에서 청년 기사 로드리고는 전투에서 사로잡은 이교도인 무어족 사라고사의 왕 알무타민을 같은 스페인 국민이라는 이유로 석방시켜주고 ‘엘시드(El Cid)'라는 영웅칭호를 얻는다. 여기에서 엘(El)은 ’신‘과 같은 급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알폰소가 형을 살해했다는 말이 떠돌자 가스티야 왕가 기사들이 연합하여 대표를 선출해 알폰소 왕이 민중들 앞에서 '자신은 산초 왕의 암살에 전혀 상관이 없다' 라고 맹세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 대표가 바로 엘 시드였다.
알폰소는 반 강제적으로 맹세하는데 이는 당시 시대상황으로 신이 세상의 중심이었으므로 중요한 사항이 있을 때 맹세를 요구했다. 이 맹세는 역사적 사실로 1933년 스페인은 알폰소가 맹세했던 바로 그 장소인 부르고스의 산타가데아(Santa Gadea) 교회 앞에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알폰소는 이 맹세가 자신을 모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엘 시드를 추방한다.
이때 엘 시드는 자신의 고향 부르고스에 부인과 두 딸 그리고 모든 재산을 두고 떠나는데 충성스런 60명의 부하들이 따라가는 것조차 금지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사라고사의 무어인 모타미드(무타민) 왕이 그를 후원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백작인 베렝게르를 막아 달라고 엘 시드에게 부탁하였는데 엘시드가 모타미드의 기대대로 베렝게르를 격파했다. 이후 엘시드는 이슬람과 10여 년 동안 기탁하면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기독교군과 이슬람임에도 기독교와 연합한 무어군을 격파하기도 했다. 특히 그를 추방한 스페인 군대를 무찔러 패배를 모르는 장군으로서 꾸준히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전세에 열세를 느낀 스페인의 알폰소 6세가 엘시드를 부르자 그는 곧바로 기독교군에 합류했다. 다시 기독교군으로 태어난 엘시드는 당대의 요충지로 무어인이 점령하고 있던 발렌시아 왕국을 점령하고 왕(스페인으로 보면 공작)으로 5년간 재위했다. 이동안 맡딸 크리스티나를 아라곤 왕자이자 몬순의 영주였던 라미로, 작은딸 마리아를 바르셀로나 백작이자 베렝게르 라몬 2세의 아들 베렝게르 라몬 3세와 결혼시켰다. 이후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8세는 그의 후손이며 추후 후손들이 나바라와 프랑스의 왕이 되어 서유럽에서 그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이때 그에게 참패당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제국 무라비트 왕조의 왕 유수프 이븐 타시핀이 발렌시아를 공격하자, 엘시드는 반격을 꾀했지만 큰 부상을 당한 후 사망한다. 이때 알폰소 6세가 도착하여 유수프와 대결했으나 참패하고 결국 발렌시아는 함락되었다.
그동안 엘시드의 죽음은 공표되지 않았으나 알폰소 왕은 전투가 끝나자 엘 시드의 죽음을 공표하였고 그의 시신을 땅에 묻지 말라고 명했다. 당시에 시신을 땅에 묻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구국영웅임을 의미한다.
히메나는 엘 시드의 시신과 함께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부르고스로 돌아갔고 나중에 부르고스 대성당에 합장되어 무덤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그의 죽음으로 발렌시아는 이슬람화되었지만 25년 후 아라공 왕에게 점령되어 이후 이슬람은 발렌시아를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스페인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에 의해 유럽대륙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레콩키스타는 재정복(Reconquest)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을 의미한다. 게르만민족인 서고트 왕국 멸망 후에 세워진 기독교 세력은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에 밀려서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 북쪽 작은 영토만 남기고 축소되었지만 근근히 버티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711년에 시작하여 스페인에서 유명한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트 왕에 의해 그라나다가 함락된 1492년까지를 의미하며 이 해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그런데 엘시드가 서양사에서 중요한 것은 레콩키스타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엘시드라는 점이다.
학자들은 엘시드에 의해 이슬람 세력이 서유럽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유럽이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피레네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으므로 프랑스로 들어가려면 지중해 남부의 길목인 발렌시아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이들 지역을 프랑스와 스페인 남부를 아우르는 까타랑 지역이라 부르는데 현재 강력하게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여하튼 엘시드가 발렌시아를 점령하여 이슬람세력의 진출을 궁극적으로 저지했기 때문에 엘시드가 서유럽의 이슬람화를 막은 장본인이라고 인식한다.
엘시드의 활약으로 이슬람이 유럽본토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서유럽으로 보면 가장 큰 의미를 보이는데 이슬람이 실패한 이유로 발렌시아 인근에 보관되어 있다는 성배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성배는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혈투로 안전한 스페인 북부와 발렌시아 인근인 카타랑 지역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엘시드에 의해 스페인 남부가 안전해지자 발렌시아 성당으로 성배가 옮겨졌기 때문이다.
엘시드가 발렌시아를 지킨 것이 결국 기독교의 보물이라 볼 수 있는 예수의 성배를 지킨 것이 되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아랍인들에 의해 서유럽이 점령되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뜻도 된다. 현재 발렌시아가 기독교인의 성지 중 성지로 받들어지는 이유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
#콜럼버스
#까타랑
#발렌시아
'예수의 3대 성유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의 3대 성유물(7) (0) | 2021.09.04 |
---|---|
예수의 3대 성유물(6) (0) | 2021.09.02 |
예수의 3대 성유물(4) (0) | 2021.09.02 |
예수의 3대 성유물(3) (0) | 2021.09.02 |
예수의 3대 성유물(2) (0) | 202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