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인정하는 성배(2)
<스페인 발렌시아의 성배>
가톨릭 교도의 수장이라 볼 수 있는 교황이 스페인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 발렌시아에 보관된 성배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한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사라고사 대학의 안토니오 벨트론 박사는 여러 가지 근거로 발렌시아 교회의 성배가 예수의 성배로 진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했다.
우선 성배가 기원전 4세기와 기원 후 1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성배의 재료가 현재의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란 사실을 1960년 밝혀냈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많은 풍상을 겪은 2,000살이 넘은 성배라는 것이다.
이 성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룩 마노(최초의 산지 시칠리아섬의 아카테스 강의 이름에서 유래)로 만든 투명한 받침잔, 그 받침잔과 같이 투명한 마노 그리고 잔을 연결하는 금으로 된 손잡이이다.
발렌시아 성당의 아우구스틴 세일즈 신부는 18세기에 매우 놀라운 사실을 기록했다.
‘성배의 색깔은 진기하고 신기해서 이 잔이 돌아갈 때마다 형태가 변했다. 이 잔을 처음 보았을 때는 약한 빛이 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사실은 기적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마노 돌의 자연적인 속성 때문이다.’
고고학자 안토니오 벨트란 마티네츠 박사는 성배를 분해하면서 받침대 부분에 먼지가 오랫동안 달라붙어 알아 볼 수 없었던 고대 아랍문자로 씌어진 비문을 발견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비문 속에 새겨진 글자는 ‘li-z-zahira(화려한 자)’이다. 이 번역은 성배의 보호자인 고대 프랑스 사람의 이름인 ‘플로리’와 일치한다.
그런데 높이 17㎝, 길이 14.5㎝의 성배가 몰약(沒藥·myrrh)으로 닦여졌는데 일부 학자들은 발렌시아의 성배가 생각보다도 크고 화려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과연 2000여 년 전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그렇게 고급스러운 잔을 사용했을까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간단하게 풀린다. 예수가 사용했다는 성배는 성배의 윗부분, 즉 짙은 주황색의 돌 잔에 국한돼 있다. 또한 금과 에메랄드, 수정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돌 잔의 아랫부분은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11세기쯤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실제 성배의 크기는 높이 7㎝에 넓이 9.5㎝로, 한국의 전통 찻잔 정도이다.
<발렌시아 성배의 행보>
발렌시아에 있는 포도주잔이 성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것은 이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배에 대해서는 많은 이설이 있으므로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점도 있음은 사실이다. 이는 성배의 일정이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성당측에서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보관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단락 기간이 길다는 약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하튼 예수의 만찬에 사용된 성배는 단 하나 임에도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많은 성배들이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중복되기도 한다. 하나의 성배로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지만, 스페인에서 발견되는 성배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가 부활한 이후 성배는 ‘천국 열쇠’를 가진 제1대 교황 베드로가 보관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베드로는 포교를 위해 로마로 향하므로 성배도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졌다고 추정한다. 이후 성배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잠잠하더니 3세기 초 비로소 나타난다.
스페인 고고학자 안토니오 벨트란(Antonio Beltrán)은 로마 발렌스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억압하면서 기독교도인들의 재산 및 기독교에 관한 흔적을 파괴하자 당시 지하교회 원로였던 산 로렌조(San Lorenzo)가 황제의 눈을 피해 성배를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웨스카(Huesca)로 옮겼다고 설명한다. 이때가 기원후 262년으로 발렌시아로부터 약 350㎞ 떨어진 곳이다. 이후 성배는 스페인 북부지방을 전전하다가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공격하는 무슬림의 공격을 피해 713년부터 예브라, 시레사, 산타마리아 데 사사베(오늘날 산 아드리안), 바이리오로 옮겨지고 이후 카타랑 지역인 산 주앙 드 라 페나(San Juan de da Peña) 수도원에서 1076년과 1399년 사이에 보관되어 있었다. 1134년 12월에 기록된 수도원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상아 상자에 예수가 들어 있는 성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배를 1399년 9월 ‘자비로운 사람’이란 별명을 아라곤 왕인 마틴 웨마노에게 넘겨졌고 그는 이를 알하페리아 왕궁과 발렌시아 인근의 바르셀로나 왕궁으로 옮긴다. 이후 1437년 3월부터 성배는 현재의 발렌시아 대성당의 산초 칼리츠(빛나는 잔 또는 성스러운 잔)로 보관되었고 이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성배로 숭배했다고 적혀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발렌시아의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들고 행렬에 참가했던 바로 그 잔인데 이 당시 성배의 진위를 두고 항의와 시위가 벌어졌다. 한마디로 성배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2006년 7월 발렌시아에서 열린 제5차 세계가정회의 폐회 미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발렌시아 성당의 성배를 들면서 집전했는데 이때 교황은 ‘이 가장 유명한 성배’라고 말했다.
여하튼 스페인에서는 이 잔을 엘산토칼리즈(el santo caliz) 즉 성배로 인식하고 상당수 스페인 인들이 이 잔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온 진짜 성만찬 잔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성배가 발렌시아 성당에 계속 보관되어 있었음에도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는 인식되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1960년 성배 전문가인 스페인의 고고학자 안토니오 벨트란(Antonio Beltrá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페인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성배라고 믿는다. 성당에서 매일 볼 수 있다’
여하튼 성배에 관한 기록은 많은 곳에 나타나는데 발렌시아 대성당 목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주 예수가 대 목요일 만찬에서 피에 포도주를 바치신 성배.’
이때의 내용을 1562년 주앙 드 주앙(Juan de Juanes)이 「마지막 만찬」으로 그렸고 이 그림은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프레스코화인데 ‘발렌시아 성배(Valencian Grail)'는 예수 앞의 탁자 위에 보인다.
성배는 이후에도 여러 번 위기를 맞는다. 1809년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군에게 약탈될 우려가 있으므로 스페인 남부의 비밀 장소로 옮겨진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제노바에 보관되어 있던 성배를 약탈해서 프랑스로 옮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렌시아의 성배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장소에 꽁꽁 안치되었는데 4년 만인 1813년 다시 발렌시아교회로 돌아온다.
그런데 성배는 또 다른 위협에 직면한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격화되면서 공산당이 성배를 빼앗아 폐기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소동도 슬기롭게 이겨내고 성배는 1939년 다시 발렌시아교회로 돌아온다. 이후 성배는 지금까지 안전하게 발렌시아교회에 보관되고 있으며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발렌시아의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들고 행렬에 참가했던 바로 그 잔이다. 스페인에서는 이 잔을 엘산토카리츠(el santo caliz)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이 잔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온 진짜 성만찬 잔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거 카톨릭 교회는 그 잔을 가장 고결한 그리스도의 성물을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잔, 혹은 예수의 피를 담은 컵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일반적으로 성배는 반짝이는 빛이 내뿜어져 나오는 접시 또는 평범한 돌로 묘사된다. 그런데 요한 바오르 2세가 직접 들고 행진한 잔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룩 마노(최초의 산지 시칠리아섬의 아카테스 강의 이름에서 유래)라는 광물로 만든 투명한 받침잔, 그 받침잔과 같이 투명한 마노 그리고 잔을 연결하는 금으로 된 손잡이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잔을 예수가 사용했으리라고 추측한다. 우선 이 재료들이 쓰이던 시기를 유추해 보면 이 잔은 기원전 4세기와 기원 후 1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또한 현재의 터키인 안티옥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 잔의 손잡이가 적어도 12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즉 이전에 이 성배는 잔이 아니라 마노로 만들어진 사발이라는 설명이다.
예수가 살아 생전에 여러 가지, 여러 개의 포도주 잔을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런 면만 생각하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여러 개의 잔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록만 보면 베드로와 아리마데 요셉이 성배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 두 사람이 별도의 포도주잔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000년 전의 것이라 할지라도 동대에 예수가 사용했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는 점이다.
성배가 200개나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이 점에 관한 한 발렌시아의 성배는 다른 어떤 성유물보다 유리하다고 설명된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발렌시아 성배는 고대 유물인데다 적어도 로마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발렌시아의 성배가 200개의 후보자 중 가장 강력한 성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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