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와 성배(3)
<재평가되는 카타르와 십자군 전투>
『다빈치 코드』의 소재가 되는 스코틀란드 로슬린 성당의 성배, 추후 제2차 세계대전시 제3제국의 히틀러와 히믈러가 추적한 카타르파의 최후의 거점 몽세귀르의 성배 탐사는 바로 이들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한다. 한마디로 십자군 전쟁 당시에 벌어졌던 기독교인들간의 전투 즉 십자군과 카타르파의 성배를 보다 확대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다빈치 코드』라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는 큰 틀에서 중세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사건인 카타르 기사단과 십자군의 전쟁인 카타르의 성배로부터 유래했는데 20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작가들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불행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906년 프랑스의 조세핀 페라다(Joséphin Péladan)는 십자군과 최후까지 처절하게 혈투를 벌인 몽세귀르의 카타르성에 주목했다. 페라다는 볼프람(Wolfram)이 쓴 파르지발(Parzival)의 성배 찾기에 나오는 그라일(Grail)성으로 알려진 몽살바(Montsalvat)가 실제로는 몽세귀르라고 주장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로 카타르인들이 성배를 확보하여 몽세귀르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몽세귀르 성에 보관되었다는 성배가 어떻게 되었느냐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1244년 몽세귀르 성이 십자군에게 점령되기 직전 어딘가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계속 화제를 몰고 다녀 1970년대 앙리 링컨(Henry Lincoln) 박사는 성배에 관해 널리 알려진 카타르와 십자군과의 혈투에 관해 보다 심층적으로 파헤쳤다. 이를 영국의 BBC 등이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링컨 박사가 1982년 출간한 『성혈, 성배(Holy Blood, Holy Grail)』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통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링컨 박사는 교황청의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이원론을 믿는 카타르파의 신화를 여러 전설과 결합하고 특히 <시온수도회>라는 비밀 조직을 부각시켰다.
여기에서 이들은 성배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예수의 혈통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혈통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성배(san greal)를 ‘왕의 혈통(sang real)’으로 설명했다.
이들에 기반을 두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사이에서 자녀를 두었는데 마리아가 가족을 프랑스로 데려갔고 궁극적으로 이들이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카톨릭 교회가 자신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온수도회>, <템플기사단>을 비롯한 비밀 결사를 통해 이들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정통 기독교로부터 사이비 역사라고 간단하게 일축되었는데 이를 보다 철저하게 고증하여 부활시킨 것이 2003년 댄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2006년 영화 「다빈치 코드」이다. 한마디로 십자군 전쟁 당시에 벌어졌던 기독교인들간의 전투 즉 십자군과 카타르파가 벌였던 성배의 쟁탈전을 보다 확대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다빈치 코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그동안 잊혀진 십자군과 카타르파의 혈투를 성배를 통해 역사의 한 장으로 소개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 『다빈치 코드』에서 헛점 찾기>
소설 『다빈치 코드』, 영화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반향을 얻자 성배를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봇물처럼 이어진다. 첫째는 『다빈치 코드』의 신빙성 여부이며 둘째는 『다빈치 코드』에서 보이는 결함 즉 헛점이 무엇이냐이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자 댄브라운은 이어서 『천사와 악마』, 『인페르노』를 출간하였고 이들 모두 곧바로 영화화되었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영화화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댄 브라운의 3권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물론 초고속 영화가 제작된 기록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댄브라운은 서양사의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추리물의 대가로 발돋움했는데 그의 『다빈치 코드』를 저술하면서 철저하게 고증 등을 거쳤음에도 수많은 반론들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댄브라운의 책을 철저하게 검증한 학자들은 몇 가지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로버트 톨렌 박사는 우선 댄브라운이 진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톨렌 박사는 『다빈치 코드』의 두 가지 핵심을 거론했다.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아이가 교회 박해를 피하기 위해 당시 갈리아 즉 현대의 프랑스에서 비밀리에 자랐으며 그 후손이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는 것으로 성배는 잔이 아니라 예수의 아이를 낳은 막달라 마리아 자신이라는 주장이다. 랭던 교수가 루브르 박물관 밑에서 궁극적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관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다빈치 코드』에서 설명한 장소에 누군가의 무덤이 없다는 것을 발표했으므로 더욱 『다빈치 코드』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기독교 정통론인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이원론을 믿는 <시온 수도회>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2000년 간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현대까지 비밀을 지켰다는데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냐이다.
여기에서 톨렌 박사는 상식적으로 2,000년이란 장기간 한마디로 80〜100세대(20〜30년/1세대) 동안 비밀이 지켜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톨렌 박사는 다음 세대로 비밀이 전해질 때마다 비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길수록 누수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간단하게 보수적인 숫자를 취하여 모든 세대에서 50명이 그 비밀을 알고 있다면 지난 2,000년 동안 최소한 4,000〜5,000명이 알고 있었다는데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의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톨렌박사의 지적중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가 설사 예수의 자식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왜 비밀로 하느냐이다. <시온수도회>는 기독교에서 그녀를 비롯하여 모든 후손을 살해했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단체를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초창기 즉 예수와 인근 시대에 그들을 죽일 힘과 동기가 없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예수의 자식과 후손들을 죽일 암살자들을 보낼 근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예수의 삶을 둘러싼 많은 모순된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하며 이는 기독교에서 중요시하는 4대 복음서에도 위배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다.
여하튼 『다빈치 코드』에 대해 기독교계에서 크게 반발한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인데 사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기본을 흔든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성경 전문가들은 놀랍게도 이 내용은 기독교의 <외경>에서는 많이 나오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서기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주재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터키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의 큰 주제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주제가 상정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에 의한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널리 전해진 <유다 복음서>,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 등 원래 성경에 속해 있던 여러 복음서가 그 후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다소 놀랍지만 아리마데 요셉이 예수의 피를 담았던 그릇 즉 성배를 갖고 왔는데 여기에서 성배의 개념이 원래 ‘Sang Real(왕의 피)’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는 추측은 매우 중요하다고 페터 베렌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왕의 피는 십자가에서 예수의 피를 담은 그릇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성체 자체도 의미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성지에서 프랑스로 갔을 때 예수의 아이를 낳았다는 추측은 이래서 나온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사망했을지는 모르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여하튼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베렌트 박사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엄청 불경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본다면 ‘왕의 피’를 이어받은 예수의 자식은 성배의 혈통을 상징적으로 여기는 모든 왕가의 조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빈치 코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온수도회>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진위이다. 다소 놀랍지만 <시온 수도회>는 막달라 마리아의 신성한 혈통을 보호할 목적으로 1099년에 설립된 비밀 형제회라고 설명된다. 이는 공식적으로 195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피에르 플랑타르 드 셍클레어(Pierre Plantard de Saint-Claire)를 통해 알려졌다.
1980년 플랑타르는 <시온수도회>와 관련된 비밀이 성배 속에 있다고 발표했다. 그 자신이 예수의 후예라고 주장했는데 플랑타르에 따르면, 1188년 <시온수도회>는 기사단과 분리되어 ‘비밀 단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시온수도회>는 존재했다는 설명이다. 플랑타르의 전력을 볼 때 그의 말 자체를 믿을 수 없는 지적도 있지만 <시온수도회>가 존재했다는 것은 많은 자료들이 증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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