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기누스 창(3)
<수많은 권력자들의 손을 거친 창>
롱기누스 창은 많은 사람들을 혼동으로 몰아가는데 이는 롱기누스 창에 대한 기록이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롱기누스 창의 진본이라 알려진 것은 앞에 설명한 4개가 아니라 수없이 많으며 이들을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기누스 창의 명성이 워낙 높으므로 당대의 지배자들은 자신이 진정한 롱기누스 창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록에 의하면 1000년 동안 약 45명이 롱기누스 창을 갖고 있었다고 말해지는데 그 중 롱기누스 창을 소지했다고 알려지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① 유대왕 헤롯(기원전 37년〜기원전 4년)
② 모리스 마니쉬안(Maurice Manichean) : 306년경 사망할 때까지 창을 쥐고 있었다는 이집트인
③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274〜337년)
황제가 밀비우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의 새로운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조사하는 동안 유세비우스는 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을 입힌 긴 창으로 상단에는 금과 보석으로 된 화환이 고정되어 있으며, 이 안에 예수의 상징이 있습니다. 그 안에 첫 글자로 예수의 이름을 나타내는 두 글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황제가 헬멧에 쓰는 모습입니다. 추후에 창에는 빛나는 보석의 풍부한 자수로 덮인 왕실 조각과 많은 금이 얽혀 있어 보는 사람에게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황제는 이 구원의 표를 모든 적대 세력에 대한 보호 수단으로 계속 사용하면서 군대를 이끌 것을 명령했습니다.’
④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⑤ 알라리크(Alaric, 게르만족)
⑥ 오토리크(게르만족)
알라리크, 오토리크는 게르만민족으로 당대 서로마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었다는 훈족의 아틸라(Attila, 395〜453)와도 크게 직결된다. 한마디로 세계 3대 정복자 중 한 명으로 일컫는 훈족의 아틸라가 당대에 롱기누스 창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틸라가 롱기누스 창을 이탈리아에 넘겼는데 그 이야기가 매우 황당하다. 아틸라 군이 이탈리아에서 기근과 역병으로 고통을 받자 아틸라가 로마 성벽에 롱기누스 창을 던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의 신성한 창이다. 나는 그것을 거룩하게 만드신 분을 알지 못하므로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아틸라는 창을 던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⑦ 찰스 마르텔 저스티니안(Charles Martel Justinian, 프랑스 통치자로 샤를마뉴의 할아버지)
⑧ 샤를마뉴 왕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에게 창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는 카롤링거 왕국의 전성기를 이룬 사람으로 로마 제국 이후 처음으로 유럽 대부분을 통일했다. 롱기누스 창을 갖고 47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알려지는데 실수로 창을 떨어뜨려 사망했다고 한다.
⑨ 하인리히 1세 파울러(재위 919년〜936년, 독일 작센 왕)
롱기누스 창은 헝가리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사용된 후 독일 작센 왕조의 소유가 되었다. 933년 3월 15일, 성 롱기누스의 날, 리아데 전투에서 헝가리를 정복했다.
⑩ 오토1세(재위 936〜973년)
교황 요한 12세는 오토 1세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 창을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오토는 이 창을 지니고 ‘렉 전투`(The Battle of Leck)’에서 몽고족을 격파했고 독일인 중 최초로 '이탈리아의 황제’가 되었다.
⑪ 바르바로사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도 창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역시 창을 개울에 떨어뜨려 몰락했다고 알려진다.
위의 기록을 보면 이들이 갖고 있는 롱기누스 창이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학자들은 대체로 로마와 비엔나의 롱기누스 창으로 혼동되었다고 설명하는데 현대사에 등장되는 독일 제3제국 히틀러의 경우 이는 비엔나의 롱기누스 창을 의미한다.
<제3제국 히틀러의 롱기누스창>
롱기누스 창이 현대인들에게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 히틀러의 애착 때문이다.
롱기누스 창은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소유가 되었다가 비엔나에 있는 합스부르크의 보물관에 보관되어 전시되었는데 1912년 9월, 아돌프 히틀러는 롱기누스 창을 보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이것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나는 주변의 풍경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몇 분 동안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것은 나를 피하는 어떤 숨겨진 내면의 의미, 내가 속으로 알고 있다고 느꼈지만 의식으로 가져올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내 힘의 부적이며 세계의 운명을 내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얼마나 롱기누스 창에 집착했는가는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마자 제3제국의 이름으로 롱기누스 창을 접수했고 창은 뉘른베르크로 전달되어 1938년 9월 당 대회에서 전시했다. 이때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중대한 시간이다. 내마음은 성스러운 창을 떠날 수 없었고 마치 수백 년 전부터 그 창을 내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이 느꼈다. 또한 이 창이 세계를 장악하게 해 줄 것이다.’
심지어 트레버 러벤스크로프트 박사는 히틀러가 특별히 롱기누스 창에 주목한 것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히틀러는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파르지발」에 크게 경도되었는데 이 작품은 성배와 롱기누스 창을 주제로 한다.
한마디로 히틀러가 롱기누스 창과 성배에 대해 누구보다 집착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롱기누스의 창과 성배를 가지면 궁극적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연합군이 1945년 독일 심장부로 진격하자 히틀러는 수도 베를린 지하 벙커에 몸을 숨기면서도 항복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독일군에게 최후의 한 명까지 대항하라고 명령했다. 롱기누스 창을 자신이 확보했기 때문에 독일이 극적인 순간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연합군의 공격이 격심해지자 히틀러는 롱기누스 창과 보석, 귀중한 예술 작품 등을 여러 지역의 지하 동굴, 폐광, 벙커에 보관토록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롱기누스 창을 확보한 사람들이 전례없는 권력의 자리에 올라 왕, 황제, 정복자로 칭송받았지만 그들이 창을 손에서 놓친 순간, 지상에서의 통치자로서의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롱기누스 창에 대한 이야기는 히틀러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다소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뉘른베르크 시에 미군이 진주한 1945년 4월 30일, 미 7군의 월터 윌리엄 혼(Walter William Horn) 중위가 미 정부의 이름으로 롱기누스 창을 확보했다.
그는 히틀러가 유럽각국에서 약탈한 예술 작품을 되찾으려는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히틀러의 보물만 전문적으로 추적했는데 정말로 히틀러의 롱기누스 창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혼 중위가 창을 확보한 90분 후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샤를마뉴 왕이 실수로 창을 떨어뜨려 사망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하튼 혼 중위가 발견한 롱기누스 창은 곧바로 미국의 조지패튼(George S. Patton) 장군에게 보고했다. 패튼 장군은 항상 자신이 로마의 줄리어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환생이라고 믿었고 누구보다도 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패튼 장군은 프랑스의 몽세귀르 성에서 독일의 스코르체니 대령이 발견한 보물 일부를 아이젠하워 장군, 브래들리 장군과 함께 직접 확인한 사람이다.
패튼 장군은 곧바로 롱기누스 창을 발견했다고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 장군이 놀랍게도 롱기누스 창을 오스트리아에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젠하워의 명령에 패튼 장군이 매우 놀랐다고 적었다. 여하튼 그가 롱기누스 창을 소유하고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그가 롱기누스 창을 비엔나에 반환한 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런데 롱기누스 창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이 태어난다. 현재 패튼이 오스트리아에 반환한 창을 비엔나의 호프스부르크 성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롱기누스 창이 원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밝힌 비엔나의 롱기누스 창>
비엔나의 롱기누스 창이 원본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은 계속 있어왔으므로 이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필요불가결하다고 볼 수 있다. 드디어 영국의 야금학자 로버트 휘더 박사가 2003년 X선 회절, 형광 테스트 및 기타 비침습적 기술로 롱기누스 창을 분석했다. 결론은 6〜7세기에 제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줄기차게 롱기누스 창으로 알려진 것은 적어도 예수 시대에 제작된 진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오랫동안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았다고 주장된 못은 1세기 경 로마에서 사용된 못과 길이와 모양이 일치하지만 사람의 피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진행된 비엔나의 고고학 연구소의 X선을 비롯한 여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비엔나 창의 연대는 예수와는 한참 후대인 8세기에서 9세기 초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롱기누스 창이 2개로 분리되었으므로 이들 모두 함께 분석했는데 이들은 동일한 금속에서 나누어졌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1989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외과의 대령으로 참전한 하워드 브에슈너(Howard A. Buechner)박사는 매우 주목할 만한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1945년 롱기누스 창을 남극대륙으로 이송하는 U-보트 잠수함 승무원과 직접 만나 롱기누스 창의 전말에 대해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가명인 하르트만 탐험(Hartmann Expedition)을 진행시켰다.
전쟁 전부터 독일의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는 롱기누스 창 기사단을 구성했다. 우선 히믈러는 신성한 롱기누스 창을 일본의 유명한 도검 제작자에게 의뢰하여 정교한 복제품을 만들었다. 복제품이 뉘른베르크에 전시되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 오스트리아 당국에 이양되었다는 것이다. 진품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남극 대륙으로 보내졌다가 아직도 유럽 어느 곳엔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중에 스코르체니 대령이 몽세귀르 성에서 발견되었다는 성배도 포함되었다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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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bargainbookreader.wordpress.com/2013/04/08/better-on-paper-constantine-movie-and-nove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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